후암동 오르소 에스프레소 바
나의 첫 에스프레소바
내돈내산
최근 두 달동안 서울의 에스프레소 바 세 곳을 다녀왔다. 후암동 오르소 에스프레소 바, 남영 근처 바마셀, 종각 오우야 에스프레소 바를 가봤다. 오늘 소개할 곳은 그중 제일 먼저 다녀온 서울 후암동 골목에 있는 작은 에스프레소 바 오르소 에스프레소바!
사실 오늘 글의 절반은 카페 후기를 빙자한 알맹이 커피 추억여행같은 글. 하지만 검색해서 첨 오신 분들은 포도알글은 안궁금하실 것 같아 포도알 부분은 아래에 '더보기'로 접어놓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만 눌러 보시면 됩니다.
내가 캔커피, 맥심 커피믹스 외에 카페 커피를 처음 맛본 건 20살 때였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지금처럼 동네방네 카페가 넘쳐나던 시절이 아니었다. 카페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대중화되진 않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는 맥심, 레쓰비로 대변되던 시절이었다. (이러니까 엄청 옛날 사람 같다 ㅠㅠ올해 20살 2003년생이라면서요....?)
아메리카노가 뭔지,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모르던 20살의 알맹이와 친구들은 선릉역에 유명하다는 케익뷔페 카페를 갔었고 1인 1케익과 함께 커피를 한 잔씩 주문하기로 했는데 메뉴판에 있는 커피 이름들을 봐도봐도 뭐가 뭔지 감도 안오더라ㅋㅋ
메뉴판에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카푸치노 어쩌구 순서로 커피종류가 쫘르륵 써 있었는데, 커피는 맥심, 레쓰비인줄로만 알았던 순진한 20살들에게는 외계어나 다름 없었고 한껏 고민하던 나는 눈치껏 라떼를 골라 무사히 생존(?)했으나, 나와 마찬가지로 커알못이었던 친구는 아무 것도 모른채 그냥 메뉴판 맨 위에 있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더랬다.
큰 머그잔에 나온 내 라떼와는 달리 컵 손잡이에 손가락도 안들어갈 정도로 작은 잔에 나온 친구의 에스프레소를 보고 알맹이와 친구들은 경악했다. 이거 소꿉놀이 하는거냐며 ㅎ 근데 마셔보고는 더 경악했다 ㅋㅋㅋㅋㅋㅋ
뭐야 이 소태처럼 쓴 커피는ㅋㅋㅋ 친구의 표정은 이 세상 모든 쓴 맛이 작은 잔 안에 농축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었고, 난 직접 마셔보지 않았음에도 그 때를 기점으로 '에스프레소=일단 피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카페가 대중화 되어 동네방네에 생기기 시작했고 왠만해서는 아메리카노만 마시며 살았는데 취업 후 처음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에스프레소를 다시 접한 후로는 에스프레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피렌체, 로마에서 길을 걷다 나오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카페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가 너무 고소하고 맛있었다.
갓 내린 크레마 가득한 에스프레소에 각설탕 하나 넣은 후 몇 바퀴 휘 저어 한입에 호로록 할 때가 정말 행복했음. 그런 맛 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우리 돈 1000원 정도 밖에 안해서 길다가 잠깐 들러 바에 서서 호로록 마시고 다시 여행길을 나섰던 추억. (더보기 끝!)
('더보기' 끝부분에서 이어짐) 그 이탈리아 여행 이후로 우리나라에선 일반 카페에 가면 에스프레소를 팔기는 해도 그런 맛의 에스프레소를 찾기가 힘들고 가격도 아메리카노랑 별 차이가 안나기도 해서 별로 마셔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엔 트렌드인지 우리나라에도 여기저기 에스프레소 바가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인 카페처럼 테이블에 앉아 오래 이야기 나누며 쉬다 가는 스타일의 공간이라기 보단 잠시 서서 호로록 마시고 금방 나가는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바가 많다.
후암동 오르소 에스프레소 바.
사실 바마셀 가고 싶었는데 그날따라 문을 닫았길래 주변 열심히 검색하다 간 곳이었는데 나름 만족했던 곳.
오르소 에스프레소바
영업시간
8:00-19:00
매주 화요일 휴무
후암동이라는 곳도 이날 처음 가봤는데, 골목 사이를 걸어다니며 골목 갬성 느끼기엔 좋은 동네지만 차 끌고 갈 곳은 1도 아니더라. 좁은 골목 양 옆으로 오래된 주택이 밀집한 동네였는데
어떤 골목은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후진해서 비켜줘야 하는 정도라 초보들은 절대 차 끌고 오면 안되는 동네. 바닥상태도 별로라 까딱하면 경사길 내려가다 차 하부 긁기에 딱 좋은 골목도 있다.
이런 곳에 자리 잡은 에스프레소바라니. 괜히 힙한 것 같고 그렇다. 사진에서도 보이다시피 규모가 작다. 주차장도 없는데 위에서도 썼다시피 동네가 그러한지라 주말에 오면 근처에 편히 차를 댈만한 곳도 잘 안보이므로 여기 갈거면 차는 두고 가길 추천.
불행히 차를 가져간 우린 주차자리 찾으려고 골목으로 진입했다가 마주오는 차를 피해 후진도 해주고, 경사길 내려가다 차 하부도 한 번 긁어야 했다 ㅠㅠ 어찌어찌 주차하고 걸어가다보니 일반 주택 밖에 없는 맞은 편 골목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저긴 뭔가 했는데 홍철책빵이었다. 아무튼 홍철책빵 가시는 분들은 거기서 가까우니 한번 들러보셔도 좋을 듯!
들어가자마자 카페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규모. 좁다란 테이블에 의자 12개 남짓 있는 규모. 바 스툴처럼 높이가 있는 의자임. 창가에 앉을까 사장님 앞 바에 앉을까 고민하다 커피 내리시는거 구경하고 싶어서 사장님 앞 자리 착석 ㅎ
바 자리 왼 편으로는 작업실 느낌의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서 커피 로스팅을 하시는 것 같았음. 로스팅한 원두도 판매하고 있음. 메뉴판은 따로 못 찍었는데
에스프레소 2000원
그라니따 3000원
마키야토 2500원
콘파냐 2500원
마로키노 3000원
아포가토 3000원
등의 숏(short)메뉴가 있고 아메리카노(3500원), 카페라떼(4000원) 같은 일반 커피도 있는데 에스프레소바까지 와서 굳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는 않을거니까 위 여섯개 중에 고민하다 가장 오리지널인 에스프레소 주문! 설탕은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원하면 설탕 빼고 주시기도함.
가격들이 대체로 착한 편인데 함정은 에스프레소 바 오면 보통 일인당 두 잔씩은 시켜먹으니 두 잔 가격 합하면 일반적인 커피 가격이랑 비슷해진다.
에스프레소 초보자거나 에스프레소 마시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콘파냐, 마로키노, 그라니따 추천! 얘네들은 에스프레소에 다른 것들이 섞여 맛이 마일드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잘 마실 수 있다.
에스프레소 : 에스프레소,설탕
그라니따 : 에스프레소 슬러시, 크림
마키야토 : 에스프레소, 설탕, 우유거품
콘파냐 : 에스프레소, 설탕, 크림
마로키노 : 에스프레소, 초콜렛, 우유, 크림, 카카오 파우더
아포가토 : 에스프레소, 바닐라 아이스크림
메뉴 이름만 보면 생소해보이지만 메뉴 이름 아래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써 있어 고르기 어렵진 않다. 그리고 사장님이 친절하셔서 모르는 건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주심.
주문과 동시에 세팅해주시는 얼음동동 탄산수와 숟가락
에스프레소바를 다녀보면 에스프레소 마시기 전후로 입가심 할 수 있게 물을 곁들여 주는 곳들이 있는데 오르소 에스프레소바도 물을 준비해주셨다.
앙증 맞은 에스프레소 잔이 귀엽다. 바닥에 가라 앉아 있는 설탕을 티스푼으로 휘 저어준 후 호로록 마시면 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쌉싸름하고 진한 에스프레소와 함께 오독오독 씹히는 굵은 설탕은 최고의 궁합이다. 아메리카노에 설탕 타 먹는다 생각하면 생각만해도 으악인데 에스프레소와 굵은 설탕 조합은 왜이리 맛있는지 ㅠㅠ
내 입맛엔 산미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고 쌉싸름하면서 달큰하고 약간 고소한 느낌의 맛이어서 맛있게 마셨다. 아메리카노와 비교하면 에스프레소는 원액 그 자체라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근데 난 중독인건지 쌉싸름 달콤하게 각성되는 느낌이 좋은데 처음부터 에스프레소에 도전하기 겁나는 분이라면 무난한 콘파냐나 마로키노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듯!
스아실 에스프레소야 한 입에 호로록하면 순삭이니까 에스프레소바 오면 기본 두 잔은 마시지만 이거 마시고 또 카페를 갈 예정이라(.....) 한 잔만 주문해서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 방문하면 그라니따나 콘파냐도 한 번 먹어보고 싶음!
어쩌다보니 단기간에 에스프레소바를 세 곳 다녀봤는데 앞으로도 몇 곳 더 다녀보고 싶다. 다음 타자는 리사르....?(파티원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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